3. 생의 불꽃을 이 강산에
진태을이 금당사에 안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숨 넘어가는 소리를하며 절마당에 엎어지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아직 식전이었다.
"진선생님, 지 한 번 살려줍쇼'사내는 숫제 애걸복걸이었다. 이제 막 오십줄에 들어섰을까말까한나이였다.
"무슨 일인데 그 난리시오?"
“제 자식들이 차례로 미쳐갑니다요. 진선생님, 제발 지 좀 한 번 살려줍쇼. 고명하신 말씀 듣잡고 부리나케 무풍을 와봤더니 이미 떠나셨다굽쇼 그래서 밤새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왔습죠. 제발 부탁입니다
요지 한 번 살려주시면 혀를 뽑아 신발이라도 삼아드리겠습니다요.”사내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사정이 절박했다. 사내는 거창에서 온이달초라는 사람이었다. 지난 가을부터 두 달 사이를 두고 다섯 아들이 모두 다 미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의원을 들인다, 굿을 한다 야단
소설 풍수 49
법석을 다 떨어봤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집안은 말이 아니었다.
한 집에 미친 자식이 다섯이나 됐으니 오죽했으랴.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소개를 했다.
무주 무풍 김부자 댁에 영통한 풍수 하나가 와 있는데 그를 불러 보이라고 아무래도 묘에 이상이 있는 모양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그래서 이렇게 불알이 떨어져라고 달려왔다는 것이
었다.
"허허,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쓰겠군."진태을은 사내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리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밤길을 달려와 새벽같이 들어섰으랴.
그처럼 기이한 일이라면 분명 외부로부터 온병임이 분명했다. 묘바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겨우내 편히 쉬었다 했더니, 해동이 되자마자 이리저리 불려다
닐 팔자였다.
그날로 길을 떠난 진태을과 이달초는 한밤중이 돼서야 거창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달구지를 잡아 타기도 하고 걷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진태을은 이달초의 양친이 묻힌 산에 올랐다. 답답하리만큼 주위가 막힌 산이었다. 그 산 언저리에 묘 두 개가 나란히 엎어져 있었다.
진태을은 세심하게 묘자리를 살폈다.
진태의 미간이바짝 좁아진 건 잠시 뒤였다. 눈꺼풀 또한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데리고 온 산역꾼들 옆에 서 있던 이달초의 입술이 숯불처럼 바싹 타들어갔다.
"당장 이 무덤들을 파시게!"
"어인 까닭인지요?"
"이 무덤들은 둘 다 사혈(巳穴)일세."
"사혈이라면.……… 뱀이 ?
"그렇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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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라는 사내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덤벙댔다.
“세상에, 세상에. 작년 봄과 여름에 차례로 돌아가신 분들의 묘인다.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 명당자리라고 믿었던 묘인다."
"마음수혈이 아니라 사방이 꽉 막힌 사혈일세. 뭐하고 있다. 뱀을키우고 있을 셈인가!"
그제서야 이달초는 산역꾼들에게 봉분을 파도록 했다. 봉분이 파헤쳐지면서 땅속으로부터 김 같은 기운이 스며나왔다. 아닌게아니라 명당이라고 볼 수도 있는 온기였다.
그러나 잠시 뒤, 산역꾼들이 외친소리는 명당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으윽, 떼뱀이다!”관속을 들여다보니 수십 마리의 떼뱀이 채 썩지도 않은 시신 주위에서 우글우글거리고 있다. 겨울을 막 난 탓이던지 뱀들은 힘이 없어 보였다. 관밖으로 나올 기미도 없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차마 눈
으로 쳐다보고 있을게 못 되었다.
"삽 이리 줘!" 산역꾼에게 삽을 건네 받은 이달초의 눈은 벌써 뒤집어져 있었다.
그는 악마를 잡듯 뱀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어른거렸고 어금니는 아스라져라고 물려 있었다. 구경하던 산역꾼 하나가 더는 참지 못하고 거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아버님, 죄송해요. 불초소생을 용서하시고 노여움 그만 푸시소 지가 존 자리로 모시겠습니다요.
으흐흐흑.”이달초는 끝내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무덤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그 속에도 떼뱀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잠시도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는 산꾼들보다 먼저 어머니
소설 풍수 51
의 무덤으로 달려들어 봉분을 까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미국 있었다.
드디어 관 뚜껑이 열렸다.
이번에는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구렁이는 고개를 치켜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이 우라질!" 이달초의 삽이 날았고 구렁이는 두 동강이 나버렸다. 구렁이는 몸이 잘려서도 계속 꿈틀댔다.
“아-”구렁이를 쳐죽인 이달초는 관속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토했다. 어머니의 시신은 머리가 잘려진 채, 다리 쪽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뿐만이아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벌레들이 뼛골을 파먹느라 난리였다. 당장 석유라도 뿌리고 훨훨 불을 붙여 태워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뼈를 수습해야 했다.
놀라운 일은 단 몇초 만에 일어났다. 새까맣던 벌레들이 햇빛을 쐬자마자 거짓말처럼 녹아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조화였다.
진태을은 내친 김에 묘자리를 잡아주었다. 명당이 어디나 있는 게아니어서 보통 자리에 잡았다. 양지 바른 곳이었다.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네만 정황이 이러니 도리가 없지"
"예?"
3월과 9월에는 개장(改葬)을 앓는 법이네만 어쩔 수 없잖은가!
이장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달초의 다섯 아들들은 벌써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빠르다면 이렇게 빠른 게 묘바람이었다.
이렇게 무덤 속에 뱀이나 벌레가 들어가는 걸 충렴(蟲濂)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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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없는 석관을 써도 온갖 벌레나 뱀, 심지어는 쥐새끼까지 들어 있는 경우가 있어 기이하기 짝이 없다. 드물게는 죽은 사람의 똥이 쌓여 있는 예도 있다. 이렇게 충렴이 들면 자손에게 흉측한 화를 미친다. 대게 중풍을 앓거나 정신질환을 낳게 한다.
무덤에 들어가는 건 그외에도 많았다. 진태을은 이날까지 수많은무덤들을 개장하면서 알 수 없는 땅속의 조화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꼈다. 물론 아무것도 안 들어가야 좋다. 하지만 잘못 묻으면 염이 들게 마련이다.
우선 목(木濂)으로 나무뿌리가 들어간 경우였다.
명당자리는 주변에 나무가 가까이 있다 해도 절대 나무뿌리가 관속으로 뻗치지 않는다. 명당은 스스로 시신을 보호한다는 말이 그래서나왔다. 목렴이 드는 경우는 대개 토질이 나쁠 때 생긴다. 자갈땅에시신을 묻으면 영락없이 이 목렴이 든다. 어떤 때는 명주실을 흩어놓은 것과 같은 실뿌리가 관속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조상의 묘에 나무뿌리가 들면 자손 가운데 신경통이나 농창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다음으로 수렴(水濂) 있다.
이수맥(水脈)이 지나는 곳에 시신을 묻으면 으레 관속에 물이 든다.
무덤 위 입수처(入首處)가 바위와 흙으로 나뉜 곳이면 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쉬워 수렴이 든다. 좌청룡의 허리가 부실하여 그 너머로 물이내다보이면 역시 수렴이 든다. 관속에 물이 들면 시신이 썩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녹아 없어져버리는 수도 있다. 드문 경우지만 복시혈(伏屍穴)이 되어 시신이 뒤집어지는 수도 있다. 칠성판에 묶인 채로 물 위에 떠 있다가 엎어지는 것이다. 이런 무덤의 자손들은 극심한 두통이나 만성질환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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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것과 같은 화렴(火濂)도 있다.
눈으로 확인한 진태을도 믿기지 않는 일로 흡사 불에 탄 것처럼 수의의 일부분이 까맣게 타 있곤 한다. 시신의 한 부분이 타 없어지는예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자손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
마지막으로 풍렴(風濂)이 있다.
말 그대로 관속에 바람이 드는 것으로 서북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는 경우다. 이 곤신풍(坤申風)을 피하지 못하면 시신이 부석부석하게 되고 만다. 자손은 이 묘바람 때문에 흉사를 당한다.
여하튼 진태을은 그날 밤을 이달초의 집에서 묵었다. 이달초는 워낙 가난한 살림이어서 닭 한 마리를 잡아 접대하는 것도 남의 집 신세를 지는 눈치였다. 너나 없이 형편이 여의치 못한 때였다. 그러나 흉액을 넘겼으니 경사였고 그에 따른 마음 표시는 해야 했다.
저녁상을 물리니 마을 촌로들이 모여들었다. 그나저나 좁아터진 방에 마실꾼들이 몰리니 숫제 포개고 앉은 형편이었다. 하지만 촌로들은진태을의 말 한마디를 귀동냥하느라고 혼이 빠졌다.
산역꾼으로 갔었던 사내가 낮에 있었던 일로 운을 뗐다. 진태을이 이치를 설명했고 그것을 기점으로 명당에 얽힌 진기한 이야기들이 풀려졌다. 촌로들은 신라말 옥룡자 도선( 玉龍子 道詵)이 왕건이 태어날것을 예언했다는 대목, 고려말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아들의 태(胎)를 룡연(龍淵)에 묻었으며 뒤에 아들 이성계가아버지 이자춘의 묘를 당대 왕이 나는 자리에 묻고 드디어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쳐대며 추임 새를 넣었다.
"한 자리 잘 쓴 집치고 다들 괜찮지라우."
"하며,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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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인네가 장군멍군을 주고받자, 가만히 듣고 있던 노인 하나도툭 불거진 광대뼈를 디밀며 초를 치고 나선다.
"그랑께 조상네 이빨 하나라도 밍당자리다 묻을라고 안하나?"
"어, 우리 말 뒷산만 혀도 그렇코마."
"타 놈들이 그라지, 이 고장 사람들이야 워디 그랍니꺼?"
좌중에서 젊은층에 속하는 산꾼이 말 호미걸이를 하고 넘어진다.
"모르는 소리 허질말어. 나 코흘리고 댕길 때, 너그 어무이 아부진 밤일도 아즉 개시허지 안 헐 때여. 그땐 참말로 난리였코마.”광대뼈 불거진 노인이 코 흘리던 때 얘기를 끄집어냈다.
이 마을 뒷산은 명당날이라는 말이 전해올 만큼 명당이 많은 산이었다. 가야산과 덕유산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산세가 수려했고 물도맑았다. 그런 명당날이라면 부지런히 묘를 쓸 일이었다. 한데 묘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은 이 뒷산이 마을의 주산(主山: 마을의 정기
가 뻗어 내려오는 산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금장처 (禁葬處가된다. 이런 산에 묘를 쓰면 그 자손은 번성하나 산신이 노해서 마을에재액을 내린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 감시자가 되어 묘 쓰는 것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명당임을 뻔히 아는데 그걸 놔둘 리가 없다.
그래서 한밤중을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암장(暗葬)하는 자들이 속출하게 마련이다.
어느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밭 곡식들이 꼬챙이처럼 말라갔다. 우물물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마를지경이었다. 기우제를 지내봐도 그만이었다.
"암장이다. 웬놈이 분명 암장을 했어!"
"턱도 없어, 누가 무슨 재주로?"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가물 리가 있나!"
소설 풍수 55
"뒷산을 샅샅이 뒤져라!"
누군가 그렇게 외치자, 마을은 꼬맹이 하나 남김없는 뒷산으로 하얗게 올라 붙었다. 그러나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하도 경계가 심해놔서 암장이 용이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마른 풀 한포기 없네.”
사람들은 허탈하게 손을 털었다.
그때였다.
"여기 마른 흙이!"아이 하나가 그렇게 외쳤고 그곳으로 우르르 달려가보니 과연 삽하나 뜬 자리로 뿌옇게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곳을 파보니 됫박 만한 관이 나왔고 그 안에 이빨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지독한 놈의 수작
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이빨을 돌로 바수며 마을 사람들은 기가 막힌나머지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삽시에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놀랍도다. 진정 풍수란 무시할 게 못 되느니."
어른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터진 말이었다.
그 뒤, 우연한 기회에 암장한 사람이 밝혀졌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마을의 서당 훈장이었다. 훈장은 멀리 대구에서 온 사람인데 마을의 뒷산에 명당이 있단 말을 전해 듣고 고향에 다녀오면서 선친의 무덤을 파고 이빨 하나를 취해와 몰래 암장했던 것이다.
“웬 밤이슬을 맞고 다니는고?"
소피를 보러 나왔다가 태을은 절 마당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들어오고 있는 바우를 발견했다.
"아랫말 사랑에 마실 나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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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의 음색에는 개운치 못한 데가 있었다. 태을은 첫날부터 바우의 밤마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사랑에 나간다면 초저녁에 갈 일이지,다 잠든 틈을 노릴 까닭이 없었다. 태을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급한건 놈의 혼사였다.
거창에서 돌아와 금당사에서 나흘을 더 머물고 난 태을은 행장을꾸렸다. 아침부터 채비를 하더니 별로 서두르지 않고 미적거렸다. 그러다 바우가 안 보이는 틈을 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바우는 예서 절살림이나 하는 게 옳겠군."
“그럼, 다른 데 쓸 요량이 있었던가?"
구암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쓸 만한 놈을 얻어서 신통찮은 재주라도 전하고 가야 할 게 아닌가."
"그럴 놈 같으면 진즉 머리 깎였네.”
"허허. 자네………?”
"일내기 전에 장가보낼 일이 큰일일세. 한참 과년한 나인데."
"어디 저들끼리 야합한 처자라도 있다는 건가?"
"밤새 주인 없는 밭 갈다 오는 게지."구암은 나름대로 짐작가는 게 있다는 말이었다. 아랫마을 주막집에
젊은 과수 하나가 있었는데 언제부턴지 바우가 그집을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을은 자신이 역시 일을 잘 엮었다고 생각했다. 무풍에서 겨울을나면서 태을은 바우의 색시감을 물색 뒀던 터였다.
옥선이올해 스무살 나는 산골마을 무풍 처자였다.
평안도 성천에서 정감록을 보고 왔다는 감결파(鑑訣派)의 둘째 딸이
소설 풍수 57
었다. 충북 진천을 거쳐 작년 겨울에 무풍으로 옮겨왔다는 감결과 최가는 이사할 때마다 오동나무 상자에 가친의 유골을 담아 메고 왔을만큼 풍수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조상의 뼈를 가보 이상으로 취급하는 풍토였다. 최가가 그랬다. 그 최가를 만난 곳은 김부자 댁에서였다.
태을은 무풍에서 제일 가는 김부자 댁 사랑에서 머물렀다. 후덕한김부자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늘 진풍수에게 맡겨왔다. 역학에서풍수에 이르기까지 도통해 버린 태을을 김부자는 든든한 바람벽으로삼았다. 그때마다 태을은 크게 어긋남없이 일을 성사시켰다. 김부자는
그런 태을을 붙잡아매두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무는 큰나무 덕을 못 보지만 사람은 큰사람 덕을 본다는 말이 있다.
무풍에서 김부자를 두고 이르는 말들이었다.
무풍 고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부자를 추앙했다. 아무리 시절이어렵다지만 자기 고을에서 끼니를 못 잇는 사람이 있는 건 모두 자신의 부덕함에서 나온 처사라는 게 김부자의 소신이었다. 그래서 고리대금업도 하지 않았고 장리쌀도 놓지 않았다. 양식이 떨어진 사람에게
양식을 빌려주고 형편대로 받았다. 농한기에 가마니를 친다거나 짐승을 거두는 일로 대신하게끔 했던 것이다.
무풍(茂豊).덕유산 자락에 터를 내린 고원지대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있었다. 산촌이지만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정감록에는 이 일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난을 피할 만하다며 십승지로 꼽고 있다.
구한말에 궁내대신을 지낸 매국노 민병섭이 이 무풍현에 아흔아홉간이나 되는 명례궁(明禮宮)을 지어 민비(閔妃)에게 헌납한 바 있었다.
무풍이 경치가 빼어나고 살기가 좋아 무릉도원 같은고로 난세에 더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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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피난처리는 추천사를 곁들였음은 물론이었다.
그런 무풍의 김부자 댁에서 겨울을 나고 있으려니 자연 사랑채에는 태을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태을의 이름은 이미 남녘 웬만한 고을이면 자자하게 알려진 마당이었다. 주역에 통달해서 육효(六爻)를 뽑으면 숨어 있는 귀신도 찾아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 관상을보게 하고 사주를 대어주면 자식이 몇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겪었고 몸에 무슨 병이 있으며 어떤 근심을 하고 있는 것인가를 족집게같이 뽑아냈다. 순박한 산촌사람들의 인정에 못 이겨 태을이 그런 걸봐주지만 사실 이런 재주는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날은 행랑채 넓은 방에서 촌부들 몇이 멍석을 짜고 있었다. 하도영험스러우니 촌부들이 엉뚱한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어르신, 이 짚단에 짚이 몇 개나 되는지 알아맞히실 수 있겠습죠."촌부들은 말끔히 추려 묶은 때깔좋은 짚단을 가리켰다.
태을은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런 시험을 못 하게 쐐기를 박고싶었다. 점심상을 물린 직후여서 여가로 삼을 만도 했다. 태을은 육효六爻)를 뽑지 않았다. 이쯤은 심안(心眼)만 뜨면 그냥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육통(六通을 깨쳤는데 한낱 지푸라기 숫자 헤아리기야 식은죽먹기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천이 셋에 백이 일곱, 십은 둘, 낱은 다섯일 게야."
촌부들이 짚단을 끌러 나누어 가지고 세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기를 마친 그들은 그 수를 합하기 시작했다.
"삼천칠백,"
“아-”수를 합친 젊은 사내가 여기까지 말하자, 방안에는 벌써 탄복이 새어나왔다.
소설 풍수 59
...……… 일십 둘!"
좌중에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 많은 지푸라기 가운데 고작 열셋밖에 안 틀리고 맞혀버린 것이다. 태을 노인을 우러르는 촌부들의 순박한 눈에 두려움이 번졌다. 흡사 그림자 있는 귀신이라도 보고 있다
는 듯이 그때였다.
잠자코 앉아 있던 진태을이 빙그레 웃었다. 촌부들은 스스로 만족 해서 그러려니 여겼다. 그런데,
"저기 저 매끼는 안셀 텐가?"
촌부들의 시선이 두 가닥으로 묶여져 둥그렇게 나뒹굴고 있는 매끼쪽으로 모였다. 최가라는 늙수그레한 촌부가 얼른 그 매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두 가닥의 꽁지를 모은 뒤, 부러 소리내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서, 여서, 일고………”
여기까지 셌을 때, 행랑채 마당에는 사정을 짐작하고 몰려든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그 가운데는 김부자 내외도 있었고 부리는 머슴들,아낙네들도 있었다. 마루 밑에 늘어져 있던 누렁이도 꼬리를 흔들며방안 동정을 살폈다. 닫힌 방문을 뚫어져라고 쳐다보는 모두의 입술이
타는 듯 목울대로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두울․ 어르신!"
화들짝 방문이 열리면서 정자관을 쓴 김부자가 들어선 건 바로 그순간이었다. 열셋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그 말대신 어르신, 하고 엎어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김부자는 자신의 귀를 후비고픈 심정이었다.
천하의 진태을이가 ?
그러나 의심도 잠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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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김부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태을을 향해 넙죽 큰절을 올리고 있는 최가의 한 손에 나머지 한 개의 지푸라기가 들려져 있었던 것이다.
"쯧쯧쯧ㅡ 이 사람들! 용렬하기는."
김부자가 덥석 달려들어 태을의 손을 잡으며 촌부들을 힐책했다. 그말은 태을의 신통한 재주를 칭찬하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가져왔다.
김부자는 그날 오후 예정에 없던 잔치를 베풀었다. 이백 근 나가는 돼지를 잡고 막걸리 열통을 내놨다. 그가 바람벽으로 삼고 있는 진태을의 진가를 맘껏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복이로다. 아암, 큰 복이고말고, 태을장 같은 귀인을 내가 모실 수 있음은 더없는 복이로다.
김부자는 연방 헤벌쭉 웃을 뿐, 좀처럼 진태을의 손을 놓을 줄 몰 랐다.
그제야 공명이 잠을 깨어 글 한수 읊었으되 (아니),
초당의 춘수족허니 창외일지지요.
대몽을 수선각고 평생을 아자지라.(원문: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구성 좋은 유객이 있어 판소리도 흘러나온다. 적벽가 중에 공명이유비를 맞아 잠에서 깨어나며 읊은 대몽시(大夢詩) 대목이었다. 오늘
의 진태을을 제갈량과 동격으로 모시겠다는 뜻이 담긴 가사내용이었다. 막걸리를 쳐대는 남정네들이나 안주를 나르는 아낙네들이나 과연 살아 돌아온 제갈량 같으신 분이라고 입을 모아대는 풍경이었다.
잔치가 끝났을 때는 밤이 이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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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진태을 어르신!"
사랑에 잠들어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뉘신가?"
"소인 최가올습니다요."
"그대가 웬일인가, 이 야심한 밤에?"
황촉불을 밝히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도 좋을는지요?"
그렇게 말하는 최가 옆에는 머리를 곱게 땋아내린 처자 하나가 다
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자다가 봉창 뜯는다더니 진태을은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종잡을 수가 없었다.
바깥 날씨가 찼으므로 태을은 우선 둘을 방안으로 들게 했다.
"어인 일인고?"
"소인의 여식이옵니다. 설쇠면 스물이 되는 과년한 나이인데 산골 에서 없이 살다보니 마땅한 혼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묵혀둘 수도 없어서………"
태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처자의 상을 봤다. 음전한 인상이었다. 동그란 귀며 깨끗한 이마 언저리에 귀티가 났다. 촌에서 배운 바 없이 자랐을 테지만 본바탕은 영특해 보였다. 아무래도 혼처 가 없다는 말은 쇤소리로 들렸다.
“사주가 어찌 되는고"절박한 사연이 있어 사주를 보러온 줄 알고 태을이 그렇게 짐짓 묻자,
"그게 아니옵고 산간에 시집 보내봐야 화전이나 일궈먹느라 고생 바가지 뒤집어쓸 게 뻔한 일, 차라리 어르신께서 거둬주셨으면 허구 말입죠, 박색이라도 심성 하나는 곱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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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는 죄진 사람 모양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여식을 천침(薦枕)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무슨 점잖치 못한 말인가 ? 늙은이를 희롱하지 마시게.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가보게. 안채에서 알면 이녁을 노망들었다고 하리."태을의 어조는 대쪽 같았다.
"어르신, 진심을 고사하시면 되려 소인이 실없어집니다요. 안채와는 벌써 내신(申)이 있었습죠."
태을은 풍류를 아는 남아였다. 젊었을 때는 기방에도 출입이 잦았고 뜸하지 않게 당하는 이런 유의 호의를 마다지 않았었다. 음양의 교합이야말로 천리가 아니던가. 하나, 이미 저승사자의 명부를 받아놓은 처지. 하룻밤 교합을 위해 앞날이 구만리 같은 멀쩡한 처자의 장래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우 녀석이었다.
"알았네. 내 거둘 것이로되 적당한 혼처가 있으니 중매나 서보겠네. 허락하겠는가 ? "허락하고 말 것도 없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랴 싶었던 최가는 그 자리에서 여식의 사주를 대었다.
"으음, 됐네."태을은 그 말뿐 더이상 가타부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날 아무때 여식과 함께 금당사를 찾으라 했다. 혼인 날짜는 그때 가서 잡아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태을은 최가에게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자리를 잡아 주었다.
“손이 번창하고 제 앞가림할 인물은 뜸하지 않게 날 걸세.”선대인의 뼈를 가지고 이사해온 보람이 있었다.
소설 풍수 63
"그랬었군. 이 놈의 짐을 그대가 대신 벗겨주셨군."
구암선사가 합장했다.
"바우란 놈 처복이 있는 게야."태을이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럴 즈음, 가뿐 숨을 몰아쉬며 들이닥치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금방 눈썹이 타들어가는 행색이었다.
"또인 모양일세, 그려. 허허허."구암선사가 진태을을 보며 웃어제꼈다.
"진태을 어르신을 모시러 왔는데요. 전주 사는 정주사 댁에서 보낸 사람이올습니다."
태을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려, 올 줄 알았느니."
"전주 정주사 댁이라면 이번에 급상을 당한 아랫마을 부인네의 친정이 아니던가 ? "구암이 노안을 크게 떴다.
정주사는 태을이 익히 알고 있는 전주 유지였다. 내로라 하는 세도가인데다 이 지방 일대에서는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집안이었다. 태을과는 그간 별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몇년 전에 죽은 정참판이 하도끈덕지게 불렀싸서 딱 한 번 찾아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워낙 엄청난야심이 드러내보여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나와버렸었다. 그 뒤로 태을은 그 집과 무관하게 지냈다. 태을의 꼬장꼬장한 성격 때문이기도했지만, 기실은 뼈대있는 집안답게 한다 하는 전임 풍수를 셋씩이나두고 있어서 태을이 끼여들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다
급하게 사람을 놓아 태을을 불러들이는 걸 보면 여간 심상찮은 일이 생긴 게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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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아무래도 서둘러 떠나야겠네. 일간 다시 올 터이니 무풍에서 내가 말한 부녀 일행이 오거든 택일하시게."태을은 자신을 부르러 온 사람과 함께 금당사를 떠났다.
"아까운 친구!"멀어져가는 뒤에다 대고 구암선사가 읊조렸다.
찾는 이가 올 줄 벌써 알고 아침부터 행장을 꾸려두고 있더니 이렇게 떠나가는군.앞날을 손금 들여다보듯 고스란히 내다보는 태을이었다. 제아무리신통한 재주를 지녔어도 시대를 골라 태어날 재주는 없으니 그게 슬
플 따름이었다. 망해버린 나라에 현자가 나서 뭐하랴. 끝 부러진 송곳이요, 끈 떨어진 연이었다. 이미 제갈량이나 강태공이 출세간間 하던 시절이 아니요, 영웅을 도와왕도(王道)를 다시 세울 때도아니었다. 왜놈들에게 억눌리고 수탈당해도 찍소리 못 하는 마당이아닌가. 그래서 뜻있는 지사들은 간도나 상해, 미국 등지로 망명을
떠나갔고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것이었지만 역급임을 아는 태을인지라 그저 무심한 조선땅이나 밟아대며 작은 묘자리나 잡아 주며 남은 생의 불꽃을 다독여가는 것이려니 어찌 유구한 역사 속에 무수한 선인과 현자들을 키워낸 이 산하는 한 번의 용틀임도 말도 없
는 것인가. 대체 천하를 떨칠 민족의 힘은 언제 돌아오려는 것인가.
후천개벽의 날은 언제 열릴 것인가. 내 알려지지 않고 망각의 세월에 묻혀버릴 현자들은 지금도 이 강산 마디마디를 어루만지며 통곡하고 있으리오만.
소설 풍수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