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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7

李太昊 2023. 1. 14. 11:30

조풍수의 야심
"발칙한 것! 감히 어느 누구의 자리를 도둑질하려고 그 같은 계략을 꾸몄단 말인가. 하마터면 저 여시 같은 것한데, 차려놓은 밥상을 빼앗길 뻔했구먼, 에잇 퉤!"
위엄어린 정자관을 쓴 정참판이 죄인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기진맥진한 죄인의 턱수염에 침방울이 달라붙어 대롱거렸다.
염소의 턱수염처럼 몽땅해서 볼품없는 수염이었다.
그 수염은 희어질 대로 희어져 있었다.
늙은이였던 것이다. "내다 버려라!"
우황든 소처럼 분을 못 이겨 하며 뒷마당을 벗어나는
정참판이었다.
떡대가 좋은 머슴들이 뒤에서 허리를 굽신거렸다.
죄인이 까무라친 뒷마당에는 고문을 하는데 사용된 형구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물고를 낼 듯이 조여드는 고문에 못 이겨 일의 자초지종을 불어버린 죄인은, 숨통이 끊어진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몸뚱이를 머슴들 몇이 거적 끌듯 질질 끌어다가 거리에 버렸다. 거리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이제야 끝났군. 좀 고되고 모양이 사납긴 했지만 난 드디어 큰일을거야. 조상들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해놓고
가게 된 셈이해내고야지, 아암,
누구도 들을 수 없었지만 죄인의 푸르죽죽한 입술 안에서 맴도는말이었다.
생기없는 안면 가득 알 수 없는 환희 같은 게 여울졌다.
그는 소리없이 내리는 밤이슬이 얼굴에 와닿는 걸 느꼈다.
직사게매맞고 행길가에 버려진 직후였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밤이슬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냥 놔둬도 늙을 대로 늙어 거의 다 죽은 목숨이었다.
하잘것없는 몸뚱이로 이마만큼 큰 명당자리와 바꿨으면 하늘이 도운거였다. 아니, 어쩌면 구년 전에 진짜 호승예불혈에 깊이 암장해둔 선친의 뼈가 감응, 자식을 도운 건지도 몰랐다. 다음은 내 차례다.
살아서 신산스러웠던 육신은 이제 깊고 그윽한 땅속, 또다른 호승예불형 명당에서 영원히 위안받을 터였다.
그리하여 누런 뼈로 남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복을 발하리라.
후훗, 내가 누군가. 이실직고할 게 따로 있지. 피는 관 밖에 내놓고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으렷다. 이것도 다. 이 조 족집게 조조의 지략에서 나온 종막이란 걸 그깟것이 알 리 없지.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모르는 영감탱이.
그는 정자관을 쓰고 호통을 치던 정참판을 떠올렸다. 길길이 날뛰던 그가 한없이 측은하기만 했다. 검버섯이 핀 얼굴이 어른거렸다.
족제비 잡아서 꼬리는 남 준다더니, 그 늙은이가 그러했다. 나는 해냈어. 한 자리 얻었어. 여의주를 삼켜버린 거야. 이쯤의 대가를 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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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천하대명당이라면 열번이라도 고쳐 죽지.
",,,,, 원맥은 가야산이니 조씨천년지지요."
죄인이 내뱉어놓고 간 마지막 말이었다. 하늘 아래 누가 알았을까. 정작 정감록을 더 숭배한 이는 정참판이 아니라, 이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슥한 시간, 두 사내가 행길에 나타나더니 쪼그려 앉아 죽은 시신을 들쳐 업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죄인이 끼친 아들들이었다.
그들의 행색에는 별반 슬퍼하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부친을 잃었는데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만 그들의 뼛속 깊은 곳에는 천년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말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뭉클한 감마저 있었다.
오늘은 기일(忌日)이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축일(祝日)이 되기도 하는셈이었다.
부친의 모사가 탈없이 이루어졌달 수 있는 오늘이었다. 희비가 엇갈린다는 말은 이래서 생겨난 말이었다.
조판기, 죄인은 바로 조풍수였다.
그는 본래 고을 아전이었다. 산공부에도 조예가 깊어
아는 사람의 묘자리를 적잖이 잡아주던 중, 시절이 혼란스러워지고 관직제도가 무너지려 하자 아전을 그만 둬버리고 일찌감치 풍수로 나섰다. 이렇다
할 벼슬은 못하고 대를 이은 아전질로 벼슬아치들의 뒤치다꺼리나 해오던 그는 누구보다도 신분상승 욕구가 강했던 편이었다.
그런 그에게, 누구나 한 자리 제대로 잘 쓰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풍수가 더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참판댁 일을 해오면서도 늘 기회를 노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십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도 탐낼 만한 길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때가 와버린 것이다.
때가 오고도 일이 바로 성사된 건 아니었다. 자그마치 구 년여의 기다림이 소요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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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조풍수는 좀 험악한 대로 그렇게 뜻을 이루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삼 개월 뒤, 박풍수도 측간을 다녀오다 미끄러 넘어지고는 사흘을 앓아눕다가 눈을 감았다.
정참판도 이듬해 봄, 땅보탬이 되고 말았다.
그가 반평생을 애써서 얻어낸 호승예불혈에 누운 것이다.
그는 눈을 감기 전에 장자 정진국에게 간절한 유언을
남겼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장(移葬)을 하지 말고,
시앗을 거느리고라도 자식 생산을 부지런히 해서 후손을 번창케 할 것이며, 각별히 교육에 힘쓸 것. 또한 덕
쌓기를 게을리 말 것이며 일상복은 될 수 있는 한 청의백의로 하고 대대로 그 옷을 가풍으로 삼을 것 등이 유언의 골자였다. 정감록을 숭배 하다 간 사람다운 유언이었다.
그날, 그러니까 삿갓스님 부지가 첩지를 건네주고 홀연히 사라 지던 그 우기(雨期)의 밤, 조풍수의 뇌리는 온통 첩지 속의 명산도로 가득 찼다. 명산도의 산맥들은 살아 숨쉬는 용이 되어 얽히고 설키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었다.
저걸 잡아야 한다.
이참에 저걸 물어야 한다. 이처럼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샌 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아직까지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속을 달려 집으로 왔다.
아비가 간밤에 무엇을 봤는지 알 리 없이 단잠에 빠져 있는 두 아들을 깨웠다.
세 부자는 무릎을 맞대고 일생일대 가장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눴다. 뜸들일 것도 없었다.
세 부자는 조촐하게 행장을 꾸리고 서둘러 남행했다.
가문의 흥망을 좌우하는 일대 모험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조풍수 세 부자가 승달산에 당도했을 때는 시누대 같은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천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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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번개도 끊임없이 머리 위를 떠나지 않고 으르렁댔다.
조풍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하기엔 더없 이 좋은 일기였다. 우선 보는 이가 없어서 안심이 되었다.
혈자리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첩지가 없다고는 하지만 종이가 뚫어져라 익혀 둔 명산도였고 수십 년간 산을 타온 이력이 있 어놔서 척하면 삼천리였다.
혈이 맺힐 만한 자리는 대체로 셋이었다.
"여기다. 너무 넓지 않게 파도록 해라!"
가운데 자리를 딛고 선 조풍수가 두 아들에게 명했다. 미후랑인이 그렸다는 호승예불혈이 틀림없었다. 명당을 찾았으므로 거기서 혈 맺는 자리를 짚어내는 일은 웬만한 실력이면 거의 오차가 없게 마련이었다.
빗속에서 두 아들이 괭이질을 시작했다. 도롱이를 뒤집어쓰고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조풍수의 눈이 야수의 그것처럼 빛났다.
"어어, 돌이 나오는데요, 아버님!"
"그럴 리가!" 조풍수가 흙구덩이를 내려다봤다. 아직 채 한자도 파지 않아 진토는커녕 부토도 다 걷어내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런데 돌이라니, 듣던중 반갑잖은 말이었다. 조풍수는 가슴이 조였다.
"그걸 파내 보거라. 밑에는 괜찮을 게야."
두 형제가 괭이질을 서둘러 돌을 파냈다.
빗물에 이겨진 흙이 덕지 덕지 묻어 있는 돌은 제법 큼직했다.
“밑에는 토질이 좋습니다.
아버님.”
"의당 그래야지."
그렇게 말하다, 아까 빼낸 돌 쪽을 본 조풍수의 관자놀이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거센 빗물에 흙이 씻기우면서 속살이 드러난 돌이 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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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않았던 것이다. 각이 져 있는데다 빛깔마저 검었다. 이런 산에 검은 돌은 결코 흔치 않은 법이었다.
"저 돌을 엎어보거라."
작은아들이 별 생각없이 괭이로 돌을 떠넘겼다.
기다리 기라도 했다
는 듯 세찬 빗물이 흙덩이를 씻어내렸다.
"글자다!"
"그러면 그렇지. 손으로 씻어내라!"
"호, 승, 예, 불, 혈-멈, 머, 랑, 인 ?"
미후랑인이다. 보나마나 그가 남긴 판석이다.
조풍수는 글이 짧아 미후라는 글자를 읽어내지 못하는 작은아들의 어깨를 헤치며 파고들었다.
우장이고 뭐고 다 내팽개쳐버리고서였다.
길지였다. 이 자리가 진혈이었다.
그는 그 오석(烏石)을 보듬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가까운 하늘에서 다시 천둥이 울었다.
어서 벼락이라도 떨어지거라.
그는 오석과 흙구덩이를 번갈아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 자리에서 당장 벼락맞아 죽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기만 했다.
천하명당이 주인을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겠다,
꽁꽁 묻어줄두 아들이 바위처럼 버티고 서 있겠다,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명당
본 김에 죽어 넘어지고 싶었다.
아니야, 그 늙은이가 누구라고. 당장 파내 태형을 먹일걸. 뿐만이랴. 뼈를 가루로 만들어, 기르던 똥개밥에 섞어줄 영감탱이야. 아직기다려야 해. 귀신도 모르게 하지 않으면 다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게 돼.
"오석을 잘 거두고 흙구덩이를 원상태로 가무려 놔라. 잡목은 물론풀뿌리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고 심어두고 흔적을 남겨선 안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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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이 흙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조풍수는 꿈결처럼 판석을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다른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아니다. 더 파라!"
"네?"
"더 파라지 않느냐.”
"아버님?"
두 아들이 우두거니 서서 푸푸 - 빗물을 뿜어냈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눈치들이었다.
그들이 그러는 건 당연했다.
이 빗속에서 언제 는 덮으랬다가 지금은 다시 파라니 그럴밖에. 하지만 조풍수가 누구이 던가.
"어서 파라. 나올 게 더 있을 테니." 그렇다.
분명 더 나올 게 있을 것이었다.
아니, 마땅이 더 있어야 한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미후랑인의 징표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 도선국사 옥룡자의 징표가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진혈이 되는 것이다.
다시 괭이질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조풍수는 똥끝이 타들어오는 걸 절감했다.
석자 깊이까지 파들어갔는데도 나오는 건 고운 흙뿐이었다.
흙구 덩이는 애초에 작게 잡았으나 깊게 파나가다 보니 자연히 넓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버님!"
큰아들이 괭이질을 멈추며 말했다.
진정 없는 것인가.
세 자나 팠으면 그만 파야 옳았다. 상식적으로도 더 깊은 곳에 판석
을 묻었을 리도 없을뿐더러, 더 파게 되면 혈(穴)할 우려마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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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옥룡자의 판석을 못 캐내면 진혈이랄 수 없다.
"더 파라!"
결국 세 자를 더 파내서 희뿌연 화강석 하나를 캐냈다. 그게 바로옥룡자가 남긴 판석이었다.
왕기를 받으려면 깊게 묻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생각났다. 옥룡자도 그걸 말하려 했음일 것이다.
조풍수는 판석을 맨 아랫자리에 옮겨 얕게 묻었다.
미후랑인이 남긴 오석은 따로 챙겨 두고서.
세부자가 맨 위쪽으로 올라가서 봉분 하나를 조성해놓기까지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가운데 자리는 웬만해서 파본 흔적을 찾기 어렵도
록 애써서 가무렸다.
정참판네 지표가 끝난 직후, 세 부자는 또 한 번 산행을 한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를 아는 이는 그의 가족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감추고 감춰서 행한 일이었다.
그건 다름아닌 조풍수의 부친 묘를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남의 묘 자리에 몰래 묻는 것이니 암장이었다. 그것도 열자 깊이로 묻는 암장이었다.
분명정참판은 세자 깊이에 쓸 거였다. 더 깊이 쓴다고 해야 여섯 자였다.
그걸 미리 계산하고서 열 자 깊이에 암장한 조풍수였다.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세월은 조마조마 흘렀던 거고 마침내 조풍수의 계략이 들통나는 일이 생기고 말았으니, 이는 사실 조풍수가 기다려온 일이기도 했다. 삿갓스님 하성부지가 예전처럼 뜬금없이 정참판댁을 찾은 것이다.
정참판이 그를 극진히 대접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참판은 하성부지에게 지표 얘기를 했고 얘기를 꺼낸 김에 좌향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딱히 거절을 못 한 하성부지는 정참판과 남행을 한다. 가서 보니 지표는 엉뚱한 데에 돼 있었고 당시의 상황이 설명된다. 그렇게 해서 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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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판석을 가지고 장난을 쳤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당시 박풍수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는데 정참판이 그걸 무시한 건 다 판석 때문이었다. 판석이 아랫자리에서 나왔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조풍수를 불러다
가 매질을 하면서 자백을 받아낸 것인데, 아직도 계략이 둘이나 더 남아 있으니……….
그리고 세 겨울을 났다. 정참판이 죽은 지도 벌써 이년이 지났고 정주사네 집에는 흉사가 겹쳤다.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서 머리만 싸매고 누워 있던 정주사가 드디어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는 전국에
서 이름 있는 풍수들을 회동시켰다.
서울 수구문 밖에서 산다는 김풍수, 대구 팔공산에서 왔다는 노풍수, 멀리 개성에서 왔다는 송풍수가 찾아 들었다. 모두가 이름 높은 풍수들이었다.
그러나 정주사는 아직도 두 사람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진태을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시 삿갓스님 하지였다.
진태을은 사람을 놓아서 수소문한 끝에 진안 마이산 아래 금당사에 머물고 있대서곧 모셔오도록 했으니 됐고, 남은 이는 하성부지였다. 하성부지는 성만 모르는 게 아니라 거처도 몰랐다.
그야말로 행각승이었던 것이다.
계룡산 동학사에도 여러 차례 사람을 보냈건만 지난 겨울에 며칠 묵었다 간 이후로는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포기해야 할 모양 이었다.
"제가 여러 선생님들을 이렇게 모신 건 잘 아시다시피 집안의 흉사가 겹친 때문이오 아무래도 제 생각 같아서는 묘바람인 듯하오 선생님들의 선처만 바랄 뿐이오 사례는 부족함이 없도록 할 것이오”
진태을이 도착하자, 정주사가 네 풍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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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 묘가 어디어디에요 ?"
듣고만 있던 좌중에서 개성 송풍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백산, 모악산 등지에 걸쳐 있지만 그곳들은 조부나 그 윗대들이고 맘에 걸리는 곳은 무안 승달산 선친 묘지요. 이년 전 장례를 지내고 나서부터 가끔 꿈자리에 나타나셨소. 장승처럼 아무 말없이 서 계시다가 쓸쓸히 돌아서시곤 하지요.”
"그럼 그곳으로 가보도록 합시다."
서울 김풍수였다. 대구 노풍수도 그러자고 초를 쳤다. 하지만 진태을만은 시종 말이 없었다.
그저 정주사의 얼굴만 골똘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기는 마침내 승달산 묘역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풍수들이 <청오경(靑烏經)〉이니 <금낭경(金囊經)>, <인자수지(人子須知),
<설심부(雪心賦)>를 운운하며 설왕설래하건만 진태을은 바위처럼 침묵만 지켰다.
"진풍수, 속에 든 얘기를 한 번 해보시오."
정주사가 채근하기도 전에 다른 풍수들이 먼저 나섰다. 말을 아껴두고 있으니 도무지 갑갑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풍수들이란 맨 나중에 의견을 개진하는 이를 두려워하게 마련이었다.
대개 맨 나중에 나서는 풍수가 상대의 요점을 취하고 허점을 베어내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예가 많았다.
"그러시오 진선생! 여기 모이신 분 가운데 저희 선친과 안면이 있는 분은 진선생 한 분뿐입니다."
정주사가 말했다. 하지만 생전에 안면이 있는 것과 죽어서 누운 묘자리를 따져보는 일은 전혀 무관했다.
"좋은 자리에 묻히셨다고 봅니다."
진태을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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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오?"
세 풍수 가운데 누군가가 비아냥거렸다.
"그렇습니다."
"하다면 어이해서 탈이 난단 말이오?"
이번에는 다른 풍수가 따져 물었다.
"탈이 날만 하니까 나겠지요."
"좋다면서 또 그렇게 말하는 건 웬소치요 ?
장풍, 득수, 점혈법을들어 자세히 설명해보시오"
“용도 생룡이고 장풍, 득수, 점혈이 다 뛰어나 보이외다."
"허어, 이런 인사를 봤나 다 뛰어난데 탈이 어디서 나누
가장 연장자인 개성 송풍수가 반말로 나왔다.
그는 아까 의견을개진하는 자리에서 혈형(形)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이 묘자리는 와(窩), 겸 (鎌), 유(乳), 돌(突)네 가지 혈형 가운데 젖꼭지 모양의 유라고 할 수 있는데, 양궁(兩宮:양팔)이 무정하게 꺾여 물과 바람이 스며들겠다고 했다.
이런 자리는 아무리 길지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흉지
이며 후손이 절멸할 자리라고 침을 튀겼었다.
"어째서 이 혈형이 무정하다는 게요. 이녁이 보기에는 양쪽이 정답게 손을 맞잡는 듯하오 안에서만 보시지 말고 밖에서도 봐야지요. "
진태을의 그 말에 송풍수는 혈 앞을 오르내려보다가 아무런 대꾸도하지 못했다. 사실 혈자리의 모양새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풍수가 어렵다는 거였다.
"내 생각도 진풍수와 같소. 다만 국(局)이 너무 크고 넓어 개인이 차지할 자리가 아닌 듯 보일 뿐."
서울 김풍수였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게중에서는 가장 실력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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